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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고대철학

플라톤은 왜 '대화편' 형식으로 글을 썼을까?

forestof 2021. 4. 6. 17:07

 

플라톤은 대화편으로 글을 썼습니다. 다들 아시듯이 주인공은 늘 소크라테스고, 길가다 만난 사람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내용으로 되어 있죠. 플라톤은 왜 이렇게 대화편으로 글을 썼을까요? 어떤 분들은 플라톤의 문학적 자질 탓이라고 하시고 심지어 더러는 플라톤이 철학보다 시나 예술에 더 가깝다고 하시기도 합니다.

 

 

1.

 

과연 그럴까요? 그 이야기를 드리기 전에 잠시 생각할 게 있습니다. 철학적인 글은 어떤 형식으로 써야 할까요?

 

일단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 또한 문제였습니다. 철학은 그리스어로 'philosophia', 곧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고 불렸습니다. '지혜'란 인간적 한계를 뛰어 넘는 것이었고, 그래서 오직 신들만이 참으로 지혜로운 자들이었죠. 신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지혜를 인간에게 넘겨줍니다. 그 일을 담당하는 신이 무사이 (Musai), 영어로 뮤즈 여신이었고, 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인간이 곧 시인이었죠. 그래서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의 서사시는 지혜를 표현하는 전형적인 양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홀연히 인간 자신이 지혜를 추구하는 활동, 철학이 생겨났습니다. '지혜'를 참칭하는 이 돌발적인 사유는 어떤 형식의 텍스트로 표현해야 할까요?

 

고대 그리스에서는 대략 5가지 정도의 형식이 출현해서 경쟁했습니다. 서사시도 있었고요, 고대 현인(sophos) 풍의 경구, 이오니아식의 건조한 산문, 플라톤 식의 대화체,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착시킨 논문체가 있습니다. 플라톤 대화록은 그런 실험적인 양식 중의 하나로 등장합니다.

 

 

2.

 

플라톤만 그런 대화편을 쓴 게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첫머리에서 문학 작품의 장르를 구분하면서, '로고스 소크라티코스(logos sokratikos)'라는 장르를 언급하는데, 이게 오늘날 말하는 대화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글을 불신했어요. 화자가 일방적으로 서술하다 보니 독자와의 소통에 한계가 있다고 봤습니다. 대신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대화야말로 살아있는 철학에 적합한 방식이라고 여겼습니다. 이 정신을 이어받은 제자들은 너나없이 대화편을 썼는데, 이 양식이 바로 '로고스 소크라티코스'입니다.

 

대화편을 처음 쓴 사람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알렉사메노스(Aleksamenos)입니다. 그의 책은 전해지지는 않지만, 기록에 그렇게 나오죠. 고대 문헌을 뒤져서 통계를 내 보면, 소크라테스 사망 후 대략 30년 동안 이런 대화편이 총 125편 정도 저술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크세노폰의 대화록이나 플라톤의 작품도 여기에 속합니다.

 

이렇게 보자면 대화편은 플라톤 개인의 문학적 기질을 반영한 장르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소크라테스의 신념을 계승한 제자들 사이에서 전개된 철학함의 한 방식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짧은 기간에 그렇게 여러 작품이 출판된 걸 보면, 당시 철학계에서 상당히 주목을 끌었고, 철학적 지혜를 표현하는 강력한 양식으로 평가받았다고 유추할 수 있겠습니다. 

 

 

3.

 

플라톤 대화편에서 흥미를 끄는건 등장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플라톤의 부모나 삼촌, 형님 세대입니다. 아테네의 전성기 끝무렵에 살던 사람들이죠. 아테네가 몰락할 때 그 도시의 주역이었던 인물, 그러니까 그 몰락에 책임이 있는 인물들이죠. 

 

플라톤은 그들을 소환한 건 가슴 아픈 일입니다. 대화편의 주인공들이 제대로 살았다면, 올바르게 사유하고 지혜롭게 처신했더라면 자신의 조국이 그토록 처참하게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으니까요. 플라톤은 선배 세대의 특징이라할 추한 욕망과 자극적인 쾌락, 개연성과 상대성에 대한 신뢰, 국가와 공동체를 이기적 욕심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태도, 이런 것들을 극복하지 못해서 자기 시대의 불행이 생겨났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윗 세대들이 정신을 차리고, 소크라테스의 피맺힌 절규에 귀 기울였더라면, 이렇게까지 몰락하지는 않았으리라, 회한과 고통의 성찰을 담아 글을 썼지요. 그게 바로 그의 대화편입니다.

<에우튀프론> 필사본

 

 

4.

 

플라톤 시절 그렇게 번창했던 대화편이 갑자기 사라진 건, 역설적으로 플라톤 탓입니다. 그가 설립한 아카데미아는 최초의 철학학교인데요. 학교에서는 교과서가 필요하죠. 학교라는 틀에 맞는 글쓰기 형식은 아무래도 논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문 형식의 글을 도입한 사람이죠. 대화편이 시들해진 것은 그런 사정을 반영합니다.

 

그렇다고 대화편이 모조리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도 여러 작품이 나왔고, 심지어 과학자 갈릴레오도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라는 대화편을 썼습니다. 근대 철학자 버클리도 <Hylas와 Philonous의 대화>라는 작품을 썼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대화편 형식을 사용합니다.

 


 

 

철학적 지혜를 표현하는 적합한 양식은 여전히 모색 중입니다. 학계에서야 주로 논문으로 소통하지만, 대가들은 고대 그리스의 여러 형식들을 뒤섞어 사유의 결에 맞는 다양한 형식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대화편은 문학적 상상력이 덧붙는 참으로 매력적인 양식이지요. 

 

최근에는 대중적인 인문학 책에도 대화 형식이 많이 사용됩니다. 그리스 철학을 개관하는 <철학사수업 1 : 고대그리스철학>도 그런 정신을 잇고 있죠. 쉽고 친근하면서도 깊이있는 내용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그리스 철학에 관심있으신 독자님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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