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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고대철학

[고대철학] 땅이 꺼지지 않는 이유는?

forestof 2021. 3. 2. 16:41

옛사람들에게 자연은 두려운 존재였다. 지진과 화산, 태풍, 해일, 홍수, 가뭄은 물론이려니와 심지어는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지는 일도 걱정거리였다. 오죽하면 기우(杞憂)라는 말이 생겼을까? 기나라의 어느 어르신만 이런 걱정을 한 게 아니다. 고대 그리스인들도 똑같은 걱정을 안고 살았다. 

 

근심을 잠재운 것은 역시나 신화였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하늘의 제왕 자리를 놓고 거인족들이 조카인 제우스와 한 판 대결을 벌인다. 최후까지 저항한 이는 아틀라스인데 신들 가운데 힘으로는 당할 자가 없었다. 마침내 제우스에게 제압당하고는 땅의 서쪽 끝에서 하늘을 받치고 서 있으라는 벌을 받는다. 천하장사인 그가 떠받치는 한 하늘은 이제 무너지지 않게 되었다. 신화 덕분에 사람들은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면 땅은 어떨까? 땅이 꺼지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보장하나?

 

그리스 신화가 그려낸 우주는 왼쪽의 그림과 같다. 하늘은 대지에서 아득히 높은 곳에 있는데, 그 거리는 청동모루를 떨어뜨리면 9일동안 자유낙하할만큼 멀다고 한다. 이번에는 지표면에서 같은 거리만큼 들어가면, 흔히 말하는 저승, 그러니까 죽은 영혼이 간다는 하데스가 있고, 또 그만큼 더 들어가면 제우스에게 저항한 거인족의 감옥인 타르타로스가 있다. 그리고도 땅은 그 아래로 계속 뻗어 있다고 믿었다. 

 

땅이 꺼지려면 이 엄청난 두께가 다 무너져야 하는데, 그럴리는 만무했다. 땅이 꺼지지 않는 이유는 그 뿌리가 아주 깊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이 정도면 안심하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깊디 깊은 땅의 뿌리에 대해 회의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땅이 아무리 깊다한들, 어딘가에는 뿌리를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땅을 떠받치는 그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오묘한 질문을 던진 사람은 바로 탈레스다. 서양 철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그 사람이다. 그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한 걸로 유명하다. 물은 우주 만물을 지탱하는 힘을 가진 근원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 주장 덕분에 철학의 아버지라는 영예도 얻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땅의 안정성을 의심했던 것이다. 신화에서 나오듯이 땅이 아주 깊다고 쳐도 그 아래쪽 끝은 어디가에는 놓여야 한다. 신화는 이곳이 어딘지 설명하지 않았다. 

 

신화가 입을 다물고 있는 이 미지의 영역, 그러니까 안개처럼 희끄무레한 그 주제에 그는 합리성과 논리를 갖춘 대답을 내놓았다. 땅이 꺼지지 않는 이유? 그건 땅이 물 위에 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땅은 물 위에 떠 있다"라는 문장은 보통 그의 경험적인 관찰의 결과라고 해석해 왔다. 그러니까 그가 늪지대를 관찰해보니 물이 빠지면 땅이 드러나는 현상을 보고 땅이 떠 있다고 봤을 거라는 해석이다. 그래서 이 문장을 신화에서 분리되어 과학적 사유를 한 증거라고 이해한다. 이게 20세기까지 알려진 철학사의 입장이다. 

 

그러나 그가 그 문장을 말하기 전에 그리스인들이 믿었던 건, 땅이 한없이 깊다는 점이다. 탈레스는 이 생각을 부정하며 저 문장을 내 놓았다. 그래서 요즘에는 이 문장이 땅의 안정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곤 한다. 다시 말해 땅이 꺼지지 않는 이유는, 신화가 말하듯이 땅이 아주 깊어서 그런 게 아니라,  우주를 지탱하는 근원적인 요소인 물이 땅을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물은 우주 만물의 기원이자 근원이며 온 우주를 떠받치기에, 만약 땅이 물 위에 떠 있다면 땅은 확실히 안정될 거라는 말이다. 

 


 

철학은 신화가 제공해 온 우주의 기원과 구조에 대한 설명을 대체하며 출현했다. 그러니까 최초의 철학자들은 신화의 특정한 설명을 조금 다르게 제시한 사람들이다. 20세기의 낡은 철학사 이론에서는 철학이 처음부터 신화와 분리된 새로운 양식의 정신으로 출현했다고 보지만, 사실은 신화가 불렀던 노래를 조금 편곡했다고 보는 게 더 적합하다. 

 

땅의 안정성에 관해서는 탈레스뿐 아니라 그의 제자들도 나름의 답을 내놓았다. 그만큼 고대인에게 중요한 문제였고, 신화가 답해온 핵심적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신화로부터 철학이 어떻게 유래했는지, 원곡인 신화를 철학이 어떻게 편곡해 갔는지, 그 자세한 이야기는 <철학사 수업 1 : 고대그리스철학> (김주연 지음)에서 확인하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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