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일기

철학책을 누가 읽어?

forestof 2021. 3. 11. 16:46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주상복합 아파트 1층에 있다. 아파트 공원 모퉁이라 집에 가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공차러 나온 아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뭘하러 왔든 그들이 똑같이 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다들 입술을 모아 쭉 내밀고 눈꺼풀을 치켜 뜬 채 유리창 너머 우리 사무실을 들여다 본다.

 

어쩌다 꼬맹이들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사무실 유리문에 달라붙어 손을 얼굴에 대고 노골적으로 들여다 본다. 눈이 마주치면 후닥닥 달아나는 놈도 있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는 놈도 있다.

 

 

      "이리 들어와."

 

 

문을 열어주면 대개는 또 달아난다. 내가 그렇게 험상궂은 걸까? 하지만 1703호에 사는 그 꼬마 아가씨처럼 뒷짐 지고 낯선 공간으로 들어서는 아이도 있다.

 

 

      "아저씨는 뭐 해요? "

      "책을 만들어요."

      "책을 만들어요? 책은 사는 건데? 근데 왜 만들어요?"

      "책 만들어서 사람들이 읽게 하려고요."

      "무슨 책인데요?"

      "철학책요."

 

 

이런이런. "철학"이라는 말은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이 단어만 나오면, 대화는 방향을 잃는다. 그게 그림책이냐고 묻는 아이도 있고, 사무실 책들이 모두 철학책이냐고 묻는 아이도 있다. 물론 철학적으로 훌륭한 반응도 나온다.

 

 

      "철학이 뭔데요? "

 

 

질문은 기특하나 대화가 더 이상 나가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책을 만드는 내가 문득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1703호에 산다는, 눈이 가자미같이 쪽 찢어진, 머리통 반만한 리본을 오른쪽 귀 위쪽에 붙이고 다니는 그 꼬마 아가씨는 정말 뜻밖의 질문을 했다.

 

 

      "아저씨가 철학책을 만들면 사람들이 읽어요?"

 

 

뼈를 때렸다. 책 만들어 사람들이 읽게 한다는 내 대답을 그대로 따라했을 뿐인데, 단지 질문으로 바꾸었을 뿐인데, 이 문장은 비수가 되어 뼈에 콱 박혔다. 철학이 중요하다고 다들 생각하지만, 주머니를 털어 굳이 철학책을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철학이 중요할지 모르지만, 사실 삶에 별 쓸모가 없어서다. 철학이 쓸모 없게된 첫 번째 이유는 너무 어려워서다. 도대체 철학은 왜 어려울까? 이건 나만 아는 비밀이라서 말 안하려고 했는데 오늘 솔직히 털어 놓자면, 철학자들이 글을 못쓰기 때문이다.

 

우리가 괜히 쫄아서 눈치채지 못해 그렇지 철학자들의 글은 엉터리다. 문장도 엉터리, 문단도 엉터리, 내용 전개도 대개는 엉터리다. 읽기 어려운 글치고 제대로된 글이 있던가 말이다. 사상이 심오해서 어려운 게 아니다. 예수님을 보라. 얼마나 쉽게 말씀하시나?.

 

 

      "하늘의 새를 보아라. 너희의 하느님께서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귀하지 않으냐?"

 

 

이런 말들은 내 피부에 와 닿고 내 영혼의 속살을 파고든다. 한 여름 계곡물처럼 온 몸을 적셔 감각의 비늘을 세운다. 오늘도 내 입에 밥이 들어오겠구나, "하느님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이른바 철학자들은 신의 보편적 자비가 어떻고, 창조의 섭리가 어떻고, 인간의 존재론적 우위가 어떻다고 떠벌리며 현학의 세계에서 논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글재주가 없어서다. 핵심을 찌르는 쉽고 간결한 문장을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아무튼 글재주 없는 그들 탓에 철학책은 안팔린다. 그러니 1703호 꼬마 아가씨에게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아니. 아저씨가 만들어도, 사람들은 잘 안 읽어요."

      "아하, 그렇구나!"

 

 

사무실 밖에서 교양있고 세련되어 보이는 아이 엄마가 부르자, 아이는 작별 인사도 없이 냉큼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세상 한 귀퉁이의 은밀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듯이, 온 아파트 사람 다 들리게 큰 소리로 외쳤다.

 

 

       "저 아저씨, 철학책 만든대!!! 아무도 안 읽는대!!!!"

 

 

뼈마디가 쑤신다. 영혼이 바스라지고, 몸이 무너진다. 사실 아이의 과장과 달리, 그래도 교양있고 사려깊은 독자들은 철학을 좀 읽긴 한다. 이런 독자에게 철학을 쉬운 표현으로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게 내가 하는 일이다.

 

1703호 꼬마가 다시오면 이번에 나온 책을 한 권 쥐어 줘야겠다. 그래서 그 교양있고 세련되어 보이는 젊은 엄마가 이 책을 읽게 해야겠다. 이 아저씨가 만든 책을 사람들이 읽기도 한다는 걸 보여줘야지. 지가 온 동네방네 들리게 소리친 게 잘못이란 것도 꼭 깨닫게 해야지. 그렇게라도 복수를 해야 내 속이 풀릴 것 같다.

 

그런데 요놈의 꼬마 아가씨, 어딜 갔는지, 촉촉한 쵸콜릿 과자도 사놓았는데, 왜 이리 안오는지 모르겠다.

 

 

 

ps. 이번에 나온 책은 보통의 철학책과 달리, 쉬우면서도 자세한 철학사 책이다. 일단 문장이 된다. 이런 철학책은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도 없다. 코로나로 집에 머무시는 우리 교양있는 선생님들에게 일독을 권해드린다. 불쌍한 책쟁이 뼈마디 좀 덜 아프게 도와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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